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를 배우기도 전, 국민학교 2학년 때 나는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을 깨달았다.
운동장엔 가을 운동회 준비로 전교생이 모여 기계체조와 덤불링을 연습하고 있었다. 잠깐 휴식 시간에 나는 코스모스 꽃에 모여든 꿀벌을 향했다. 당시 흔히 아이들이 그렇듯, 나도 고무신 한 짝을 벗어 잽싸게 꽃에 앉아 꿀을 빨던 꿀벌을 낚아챘다. 그리곤 몇 바퀴 크게 팔을 휘저으며 돌려서 땅 바닥에 내리쳤다. 그리고 나면 꿀벌은 비틀거리고 그 틈에 꿀벌의 침을 빼곤 거기에 묻은 꿀을 빨을 수가 있다.
공중으로 몇 바퀴 돌려 힘껏 고무신을 땅 바닥에 내려 친 순간 온 지구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정말 온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요란스럽게 돌기 시작했다. 갈릴레오를 배우기도 전에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을 나는 그 때 깨달았다. 이론적으로가 아니라 체험적으로 말이다. 그리곤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는다. 기절했던 것이다. 내가 머리가 좋아서 깨달은 것이 아니라 극심한 영양실조와 악성 빈혈 덕분이었다.
깨어났을 때 나는 이미 5학년과 6학년 교실 (칸막이를 치우면 강당이 됐음)로 옮겨져 마루 바닥에 뉘어져 있었고 내 주변에는 선생님들과 고학년 누나들이 나를 주무르고 있었다. 나를 깨우느라 물을 부었는지 온 몸과 마루가 물에 젖어 있었고 물론 나는 발가 벗겨져 있었다.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나의 깨어남을 반겨 주었다.
그러나, 그 일 후에 친구들은 나를 향해 박자와 음정을 맞춰 합창을 해 댔다: “알래 꼴래리… 나~는 차~ㅇ기 ㄲㅊ 봤대요….. ㄲㅊ 봤대요.” 넘넘 창피했다. 게다가 여학생들까지 같은 노래를 불렀다: “알래 꼴래리… 나~는 차~ㅇ기 ㄲㅊ 봤대요….. ㄲㅊ 봤대요.” 그 합창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나는 너무나 창피했고 쥐구멍을 찾았다.
오랜 세월 지난 후, 나는 그 창피했던 시절을 우리 아이들 앞에서 되살렸다. 이번엔 나는 벌거벗은 ‘노아’가 되고 나를 놀렸던 친구들은 노아의 맏아들 ‘함’이 되었다: 여러분, 누굴 놀려 보았어요? 쩔쩔매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지요? “알래꼴래리…… 누구 누구는…… 키가 작대요…… 키가 작대요. 알래꼴래리……”
놀리는 것은 아주 재미있어요. 그러나 놀림을 받는 사람은 좋을까요, 나쁠까요? 나쁘지요? 그래서 사람들을 놀리면 안 돼요. 골탕을 먹이면 안 돼요.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너무 놀리지 마세요. 더구나 어른들을 놀리면 안되지요?
노아 할아버지가 어느 날 포도주를 많이 마셨어요. 포도주 술 기운이 도니까 얼굴이 화끈거리고 노곤하고 나른하고 눈이 슬슬 감기면서 졸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왜 그리 더운지…… 옷을 하나 하나 벗다가 보니까 이렇게 됐어요. (노아 할아버지 사진을 인터넷에서 프린트 했음) 우리 모두 아 챙피!! (아이들과 함께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시늉을 했음) 때마침 큰 아들 함이 들어왔다가 아버지의 벌거벗고 잠든 모습을 보았어요. 함은 나가서 온 동네 방네 다니면서 노래를 불렀어요. “알래 꼴래리…. 우리 아빠는 벌거벗었대 벌거벗었대…..” 두 동생들은 너무 창피했어요. 그래서 옷을 벗어서 (내가 가운을 벗었음. 내 등에는 아침에 매달아 놓은 ‘셈과 야벳’이란 글씨가 쓰여져 있었음)…… (등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며……) 그런데 두 동생들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모두 내 등에 있는 ‘셈과 야벳’을 보고, 합창으로 소리침) 어떻게 알았지요?
우리 교회 학생들은 참 영리하기도 해라…… (칭찬에 모두 빙그레……) 두 동생들은 옷을 들고 뒷걸음으로 들어가 벌거벗고 주무시는 아버지 위에 놓아 부끄러움을 가려 주었어요…… (벌거벗은 노아의 프린트 종이 위에 내 가운을 사뿐히 내려 놓았다.) 노아는 잠에서 깨어난 후 셈과 야벳을 크게 칭찬해 주었어요. (20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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