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성탄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로테르담 한인교회 교우들은 영국 교우들 앞으로 어깨춤을 추면서 모두 함께 노래를 불렀다. 관중들 앞에서 반월 형태로 둘러섰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뒷부분의 가사를 고쳐 무용을 공부하는 유학생 윤지현씨와 애기 엄마 이미숙씨가 한 발 앞에 나서며 노래했다: “만삭의 마리아 나귀에 태우고 터덜터덜 우리 요셉 걸어서 간다.” 그 동안 마리아로 분장한 김지혜양은 라면 박스로 만든 나귀를 타고, 요셉으로 분장한 공진석군은 나귀를 끌고 무대 중앙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뒤 이어 모두 합창을 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한국어를 모르는 영국 교인들이었지만 분장만 보고도 그 뜻을 아는 듯 탄성을 지르며 환호를 했다.
(영국 스콧치 장로교회 목사 칼버트(Robert A. Calvert) 목사 가족)
한인교우들은 모두 초 긴장 상태였다. 영국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와 연합으로 성탄행사를 가졌던 한국 교회는 한국의 민요 아리랑 곡에 맞추어 첫 부분은 합창으로, 뒷부분은 개사된 내용을 번갈아 두 사람이 함께 불러 흥을 돋우며 찬송을 이끌어 나갔다. 연습도 충분치 못했다. 아니 충분히 못했다기 보다 연습을 아예 하질 못했다. 세를 내고 예배를 드렸기에 연습 공간이나 시간이 마땅치 않았다. ‘망신, 그것도 국제 망신’이다 싶었다. 가난하고 키 작은 교우들이 키 큰 영국 교우들 앞에 기죽지 않고 잘 해 주기만 고대할 뿐……
김삼중씨는 튜바를 공부하는 유학생이다. 키도 크고 몸도 좋았다. 김왕국씨도 작곡을 공부하는 유학생인데 키가 컸다. 키 큰 두 학생들이 키 작은 한인 교우들을 대표해서 한 발 앞서며 선창을 했다: “베들레헴 지경엔 호적 하는 사람들 여관집 집 마다 가득 찼네.” 동시에 회사에 다니는 고재홍씨가 여관집 주인으로 분장하여 “HOTEL”간판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뒤 이어 모두 합창을 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이 때쯤 영국 교인들도 어느 정도 아리랑 음률에 익숙했는지 흥얼거리며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 해에 한인 교회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갔다. 바로 20 세기를 지나 21 세기를 넘는 아리랑 고개 말이다. 서기 2000 년을 보내면서 온통 전 세계 매스컴은 새로운 세기를 맞는다며 요란하게 법석을 떨고 있었다. 의미 깊었던 그 해의 성탄절 이브 행사를 영국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성도들과 함께 하였다. 국적도 다르고 교단도 다르고 언어와 문화, 모든 것이 다르지만 그리스도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고백이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한 형제……
다시 윤지현씨와 이미숙씨가 개사된 아리랑으로 합창을 했다: “마리아 요셉이 간청을 하건만 여관집 주인은 방 없다 하네.” 동시에 마리아와 요셉이 여관 문을 두드리고 여관 주인은 “No Room”이라고 쓴 간판을 들었다. 성탄절 시즌이니만큼 영국 교인들은 “HOTEL”이니 “No Room”이니 단어만 보아도 그 뜻을 알았을 것이다. 합창이 이어졌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다시 김삼중씨와 김왕국씨가 한 발 앞서며 합창을 했다: “마리아 진통하며 아기를 낳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시라.” 마리아로 분장한 김지혜양이 숨겼던 아기 예수 인형을 꺼내 안았다. 동시에 뒤에 물러선 모든 교인들이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와 허리를 구푸려 아기 예수께 경배를 했다. 그리곤 모두 합창을 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이 때쯤 많은 영국인들이 허밍으로 합창에 끼어들었다. 비로소 이 목사도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그 곡조로 커다란 팡파르가 울렸다. 트럼펫을 공부하는 남정훈씨가 트럼펫을 불었다. 김왕국씨와 이미숙씨는 부부다. 트럼펫 곡조에 맞추어 노래가 아니라 맨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천사들 나타나 노래를 부르니, 하늘에 큰 영광 땅에는 평화.” 그리고 모두 합창을 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한인 교회는 그 해에 아리랑 고개를 넘어갔다. 성탄절 그 다음 주일이 그 해의 마지막 주일이었고 그 마지막 주일에 교회는 문을 닫고 교인들은 해산하기로 하였다. 모든 교우들은 각기 가고 싶은 교회들을 선택해서 흩어질 것이다. 지난 6월 6.25 행사 때 K 방송 사태 여파를 극복하지 못해 교인들은 줄어들었고 유학생들이 대부분이었던 교우들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 보다 큰 이웃 교회를 기웃거렸다.
그렇다고 K 방송이나 이웃 교회를 탓하지 않았다. 왜 이지경이 되었나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 속에도 하나님의 어떤 섭리가 있었음을 뒤늦게야 깨달을 수가 있었다. 이 목사는 식구들만 데리고 한인교회가 없는 다른 도시로 가기로 결정했다. 교인들에겐 차마 함께 가자는 소리를 못했다. 가난한 유학생들이 대부분인 교우들에게 다른 도시로 이사가면서 거기까지 따라 오라고는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모든 교우들에게 자유스럽게 가고 싶은 교회를 선택해서 찾아 가게 하였다. 주보에 이웃 교회들 주소와 목사님들 주소를 자세히 적어 놓았다.
윤지현씨와 이미숙씨가 한 발 나서며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대신 “한 밤에 들에서 양치던 목자들 영광의 천사의 지시를 받는다” 합창했다. 목자들로 분장한 김재균씨, 소진선씨가 나왔다. 그리고 천사들의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 모두 합창을 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아리랑’ 노래가 슬프다. 아리랑이 고개 이름이었던가? 왜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 것인가? 아리랑은 눈물로 넘어야 하는 고개인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라니? 그건 이 목사를 버리고 갈 교우들을 가리키는가? 그들에게 이 목사를 버리고 가지 말아 달라고 협박하는 건가, 애원하는 건가? 아무튼 소리 높여 불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김삼중씨와 김왕국씨가 또 한 발 앞서며 선창했다: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 목자들 엎드려 경배한다.” 목자로 분장한 김재균씨, 소진선씨 아기 예수께 경배하면서 모두 합창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많은 영국 교우들이 합창할 뿐만 아니라 그 사이 어깨춤까지 배워 덩실거렸다.
자녀들의 화목함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 즐겁듯 하나님께서도 성도들의 화목한 모습을 보시는 것이 그렇게도 즐거우신가 보다…… 성경에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 1).
윤지현씨, 이미숙씨 한 발 앞서며 선창했다: “창공의 한 별이 나타나서 동방의 박사들 길 인도한다.” 그 때 동방 박사로 분장한 공성호씨가(후에 정말 박사님이 되셨다) 한 손에는 라면 박스로 만든 낙타를 붙들어 타고 다른 손에는 막대기에 높이 꽂은 별을 들고 따라 갔다. 이 모습을 본 영국 교인들은 박장 대소를 했다. 콧수염에 키 큰 칼버트 목사는 아예 몸을 가누지 못했다. 이 때에 커다란 자부심을 느꼈다. 그리고 이 공연이 대 성공으로 끝날 것임을 예감할 수 있었다. 모두 합창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오래 전 미국 뉴욕의 김용욱 원로목사가 메일 주소를 보내셨다. 유튜브 주소다. 들어가 보니 미국 장로교회에서는 몇 년 전부터 아리랑 곡 찬송가를 부른다고 한다. 로테르담 한인교회는 벌써 지난 2000 년에 아리랑 성탄 찬송을 불렀다. 얼마나 빠른가! 그리고 아리랑이야 말로 세계적인 음률로 그 적용 장르가 무척 넓다는 전문가들의 진단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교우들이 불렀던 아리랑 성탄 찬송에 영국 교우들이 그렇게도 빨리 적응하고 따라 할 수 있었던 것이 새삼 기억났다.
앞에 선 모든 교우들이 한 발씩 앞으로 나와 선창했다: “정성의 예물로 경배 드려 우리 모두 주 앞에 경배하세.” 그리고 신호에 따라 모든 영국 교인들도 모두 일어서 어깨 춤을 하면서 합창을 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공연 1 주일 전에 급하게 만들었던 성탄 찬송이 이렇게 대 성공을 거두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하였다. 한민족의 자랑스러운 아리랑 곡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인교회는 그 해에 아리랑 고개를 정말 넘었다. 그 해 마지막 주일에 교회 해산 예배를 드렸다. 교인들은 주보에 적혀 있는 이웃 교회들 주소를 따라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가고 싶은 교회를 골라 마음껏 떠날 것이다. 눈물은 감춘 채 서로 웃는 얼굴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2001년 새 해가 밝았다. 매스컴에서는 새로운 세기라고 야단이었다. 새로운 세기 첫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이 목사는 달랑 식구들만을 데리고 멀리 다른 도시, 헤이그에서도 트램을 타고 더 찾아가야 하는 외딴 구석 마리아후베(Mariahoeve)에 예배 드리기 위해 빌린 한 초등학교(De Leeuwerikhoeve, Walenburg 25, 2591 Den Haag) 체육관으로 떠났다. 정말 새로운 세기였다. 각기 흩어져 교회를 정했을 성도들, 낯선 교회를 찾아 갈 교우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복을 빌었다. 주의 은혜가 함께 하시길….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 했던가? 그 세기의 첫 주일 날, 골목길을 돌며 교회 가까이 다가갈 때 이 목사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낯익은 모습들이 눈에 스치는 것 같았다. 잘못 보았나? 설마….? 아니겠지…. 로테르담에서 교인들이 찾아 올리는 없어. 거리가 너무 멀어…. 기차비가 너무 비싸…. 우리 교인들은 아닐꺼야…. 1시간이 넘는 거리인데….
그러나 두 세 명씩 트램 정류장으로부터 떼를 지어 가는 뒷 모습이 키 작은 동양인들인 것은 틀림 없었다. “아니…. 저건 정도씨와 기흥씨 아냐? 공성호 집사님이잖아?” 가까이 다가가며 이 목사와 사모, 뒷자리에 탄 종율이와 미리는 탄성을 질러댔다. 바로 우리 교인들…. 작년까지, 아니 지난 주까지 우리 교인들이었던 그들이 우리를 찾아 멀고 먼 순례의 길을 찾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가난한 유학생들이 기차와 트램과 버스를 번갈아 갈아 타며 마리아후베 외딴 구석까지 예배를 드리기 위해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었다. 힘들게 찾아 오는 그들에게 몹시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 몹시 미안하고 한없이 또 미안했다.
오히려 ‘나를 버리고 가신 님(?)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한 가정만 한국어를 못하는 남편 독촉에 네덜란드 교회로 잠시 갔다 한 달 후에 다시 돌아왔다. 결국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한 사람도 없었다. 물론 발병이 났던 ‘님’도 없었다.
그렇게 높고 험한 눈물의 2000년 아리랑 고개를 무사히 잘 넘었다. 주님의 은혜다. 못난 자신을 따라 와 준 모든 교우들에게 이 목사는 진정으로 고마워했다. 헤이그로 이사 온 한인교회 앞에는 새로운 세기, 헤이그 시대의 문이 활짝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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