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목 생활
나는 육군보병학교에서 16주 훈련받고 중위로 임관하여 내 고향 강원도 화천군 원천리에서 멀지 않은 강원도 화천군 사창리에 있는 육군 제 27사단 79연대 2799부대의 군목으로 발령받았다. 군목 생활 3년 내내, 나를 군목으로 세워 주신 주님의 은혜와 고생하는 사병들을 돌보겠다는 결심을 잊지 않았다. 매일 아침 눈 뜨고 내가 군종 사병들에게 주는 첫 임무는 늘 같았다: “연대 본부에 올라가 부대 안에서 어느 소대나 중대가 가장 힘든 훈련을 받거나 고생하고 있는지 알아오라!”
그렇게 확인된 소대나 중대를 그 날 찾아가 복음 전하고 기도해 주었다. 군목이 찾아가면 모두가 반가워했다. 바쁠 때는 부대원들에게 껌만 나눠 주기도 했고 지휘관들은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면 종종 전 병력을 야외 훈련장이나 작업장 적당한 곳에 병력을 소집해 놓고 즉석에서 기도나 인격 지도를 부탁하기도 했다. 지휘관들도 군목을 기다렸다. 그러나 나는 계급 높은 지휘관들보다, 고되게 훈련받는 병사들을 먼저 찾아다녔다. 나의 직속 상관이자 부대 지휘관인 연대장께는 자주 찾아뵙지 못하더라도 섭섭해 하지 마시라고 미리 양해의 말씀을 드렸다.
1979년 추운 겨울 Team Spirit 훈련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있었다. 연대 전체가 들과 산으로 다니며 보름동안 훈련했다. 추운 겨울 들판에서 땅을 파고 텐트를 치고, 옷을 입은 채로, 군화를 신은 채로, 판초 우의를 아래로 깔고 위로 덮고 잤다. 처음으로 양말을 신은 채로, 군화를 벗지 못한 채로 1주일을 견디어 봤다. 훈련 도중 우연히 연대장 막사에 들렀을 때 연대장께서 말씀하셨다: “목사님, 사병들만 찾아다니지 마시고, 저도 좀 찾아 주세요. 저도 어린 양입니다.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세요.” 반 농담 삼아 웃으며 말씀하셨지만, 진심도 느껴졌다. 아무리 계급이 높아도, 심지어 지휘관 조차도, 주님께는 모두가 어린 양이고 애숭이 목사를 기다리고 있구나.
많은 이들이 군목의 군 생활을 부러워한다. 시간이 많고 자유롭기 때문이다. 따로 훈련도 없다. 1년에 한 두번 있는 군종병과 교육은 교관이나 교육생이나 모두 목사님들, 혹은 스님들, 혹은 신부님들이니 마냥 즐겁고 한가한 시간이었다. 매 주일 예배 인도와 한 달에 한두번 정도 지휘관을 만나 보고하면 상황 끝이다. 한 달에 한번 사단 군종부에 보고하는 일은 주로 군종 사병에게 맡겼다. 딱히 부대 내에서 사망 사고만 없으면 마냥 놀아도 된다. 언젠가 우리 연대장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군목이 바쁘면 부대가 사고가 많다는 말이고, 그러면 지휘관이 지휘를 잘 못한다는 말도 됩니다. 목사님은 편히 쉬시고 놀러 다녀야 제가 지휘를 잘 하는 겁니다.”
그러나, 나는 사명감에 매어 편히 쉴 틈이 없었다. 군목 되기 전에 주님께 기도하며 약속하지 않았나…. 땀흘려 고생하는 병사들을 열심히 찾아 보겠다고…. 나는 사격장, 유격장, 화악산 꼭대기 초소, 전방 초소, 파견부대, 춘천 탄약고, 목단리 초소 건설 현장 등을 정신 없이 찾아 다녔다. 한밤중에는 보초 서는 병사들을 찾아 다니며 기도해 주었고, 내무반도 수시로 돌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말씀으로 위로했다. 군목은 부대 어디를 가나 기도할 수 있고 인격지도란 이름으로 주의 복음 전할 수가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군대는 참 좋은 선교지였다.
<군인 같지 않은 군인>
어느 날 두 스타 사단장이 나를 부르셨다. 나는 영문도 모른채 사단 사령부를 방문하게 되었다. 겁도 났고 긴장 되었다. 잘못한 일도 없는데….? 사단장실에 들어가기 전에 참모장실을 지나야 되는데, 대령 참모장은 기독장교회 회장으로 나를 아껴주던 사단 사령부 교회의 집사였다. 사단장을 만나기 전에 참모장에게 인사도 드리고 사단장이 나를 부르신 연유를 묻고 싶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자리에 계시지 않았다. 사병의 말로는 시내에 잠깐 나가셨단다.
사단장실 커다란 탁자에 사단장과 단 둘이 마주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힘든 대화였다. 나는 애송이 목사였고 사단장은 계급 높은 역전의 용사셨다. 영내에서는 얼굴조차 마주하기 어려운 분이었다. 사단장은 매우 온화하셨고 부드럽게 나를 대해 주셨다. 그런데 나도 어려워하고 사단장도 나를 어려워했다. 성직자이기 때문이리라. 몇 마디 덕담 섞인 인사를 주고 받고는 이내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나는 구변과 재치도 없어 말을 못하고 앉아 있었다. 얼마 쯤 지나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서며 말씀드렸다: “사단장님, 오늘 초청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사단장님도 바쁘실텐데…. 저는 이제 일어 서겠습니다.” 나를 부르신 연유를 묻지 않고 일어선 것이 큰 실수였다.
그런데 사단장은 저녁까지 함께 하시자고 내게 간청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솔직히 영문을 몰라 무조건 피하고 사단장실을 떠나려고만 했다. 그 때 나는 단호히 말씀 드렸다. 선약이 있노라고…. 아무리 지휘관이고 당신 부하이지만, 일단 성직자 신분이기 때문에 성직자가 ‘선약’이 있다는 데야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사단장도 결국 나를 놓아 주셨다. 그 선약 때문에 사단장실을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다. 나오면서 참모장실을 지나며 다시 참모장을 찾았으나 여전히 자리에 계시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 지난 후,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에 나가던 중, 찝차를 타고 마주 오던 감찰참모 중령을 만나 점심을 대접받게 되었다. 그는 첫 마디로 물었다: “목사님, 사단장님 만났을 때 무슨 선약이 있으셨습니까?” “예, 그날 저녁 우리 군종 사병들에게 라면을 사주기로 약속했었습니다.”
감찰참모가 기가 막혀 했다: “말도 안 됩니다. 목사님을 부르시기 전에, 사단장님이 시내에 최고의 저녁 식사를 준비시키신 것은 알고 계셨나요?” 알고 보니 그날 나와 사단장과의 저녁 식사를 위해 참모장께서 직접 시내까지 나가 준비하셨다고 한다. 나는 사단장과 참모장, 두 어른들에게 큰 결례를 범했던 것이다. 여간 미안하고 죄송한 생각에 안절부절 못하자 나를 위로하며 감찰참모는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저희 군인들은 심지어 연대장들도 무슨 선약이 있더라도, 사단장께서 부르시면 달려가고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면 모든 선약을 다 취소하고 사단장을 따라갑니다. 사단장의 말씀은 곧 명령입니다. 선약이 어디 있습니까? 곧 바로 취소지요. 그런데 목사님은 우리 사단에서 사단장님의 제안을 단번에 뿌리치신 유일한 분입니다. 사단 사령부 내에 소문이 퍼졌습니다. 군복을 입고 계시지만, 군인 같지 않은 군인, 그래서 저희들이 목사님을 부러워하고 또 존경합니다. 껄껄껄….”
어쩌다 사단장 무서워 무조건 도망쳐 나온 쫌팽이 이목사가 사단장 초청도 단번에 뿌리친 아주 용감한 목사로 둔갑돼서 사단 사령부 장교들 사이에 소문이 퍼진 것이다.
그제서야 감찰참모는 얼마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사창리 사단 본부에서 가평으로 넘어가는 화악산 꼭대기에는 비상시를 대비한 민간인 통행이 제한된 군사 도로와 터널이 있는데 우리 연대 1개 소대가 파견되어 경계 근무를 서고 있었다. 나는 군종사병을 데리고 그곳을 방문하여 기도해 주고 온적이 있었다. 올라가는 산 길이 너무 가파라 50cc짜리 오토바이가 올라가지 못해 산 자락 길 가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힘들게 걸어서 터널까지 올라서 인격지도를 해 주고 내려 온 적이 있었다. 하루 종일 걸렸고 힘들었다.
감찰참모의 말로는 마침 그 날, 사단장도 찝차로 산을 넘으면서 내 오토바이를 보시고 찝차 뒷자리에 동승한 그에게 저 오토바이는 누구 것인가 물으셨단다. 앞에 치마가 달린 연두색 50cc 오토바이는 사단 내에서 79연대 이창기 목사님만 타시는 것으로 아마도 터널 경계 근무병들을 방문하신 것 같다고 대답하셨단다.
사단장은 산을 넘어 일 마치고 돌아 오면서 갑자기 계획에 없던 파견 소대를 방문하셨다. 바로 내가 먼저 기도해 주고 떠난 그 파견 소대였다. 그리곤 혹시나 하고 이 목사가 다녀가셨느냐 묻고 나에 대해 자세히 물으셨단다. 그리고 놀라서 “목사님이 여기까지 걸어서 올라오셔서 기도해 주시고 떠나셨구나….” 감동을 받으셨고 그래서 나를 불러 저녁 식사를 대접하려 하셨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단장 찝차에 함께 동승했던 중령 감찰 참모의 전언이다. 나는 사단장에게 잘 보이려고 거기까지 갔던 것은 아니다. 내 할 일만 했을 뿐이다. 사단장에게 잘 보일 이유도 없고 그럴 생각조차 없었다. 사단장의 일정을 내가 어찌 알았으랴. 전적으로 우연이었다. 아니, 우연이라기 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높여 주시기 위해 섭리하신 것 같았다.
못난 이 목사를 이렇게 사랑 받고 존경 받도록 높여 주신 우리 주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린다.주님 앞에서 내 사명을 감당하고 낮은 곳에서 섬기려 할 때에 주님께서는 나를 한 없이 높여 주신다는 것을 나는 군에서 체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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