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군목이 되려 하느냐?
목원대학교 신학과 1학년 시절, 나는 군목시험(군종장교후보생시험)을 보았다. 하지만 내 키와 몸무게는 대한민국 국군 장교가 되는 신체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키 158cm, 몸무게 48kg. 게다가 나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거정눈에 부동시였다. 사물이 모두 둘로 보이는데, 전장에서 적이 둘로 보인다면 누구를 향해 총을 쏘겠는가? 사실 나는 일반 사병으로도 입대가 불가능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군종장교가 되겠다고 시험을 본 것이다.
시험장이었던 서울 냉천동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실 한쪽에 책임자인 군의관이 앉아 있었고, 여러 명의 의무병들이 칸을 나누어 앉아 줄지어 들어오는 지원자들의 신체를 검사하고 있었다. 내 키와 몸무게를 측정하던 의무병이 나를 보며 말했다: “여기는 왜 오셨어요? 떨어질 게 뻔한데….”
좀 작게 말했으면 덜 창피했을 텐데, 큰 소리로 말하는 바람에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대답을 못하는 사이, 그 의무병은 내 신체 기록 카드에 내 키를 162cm로 키우고, 몸무게를 52kg으로 높여 적었다. 뇌물을 준 것도 아니고 잘 봐 달란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그냥 그가 알아서 적은 것이다. 내 일평생 이렇게 순식간에 키가 커 본 적도, 몸무게가 늘어 본 적도 없었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학교 기숙사에서 목동 신학관을 향해 완만한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언덕 위 꿈나무라 부르는 느티나무 곁엔 게시판이 있었고 길 가던 학생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게시판 앞에 모여 있었다. 그들은 게시판과 나를 번갈아 쳐다 보았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군종장교 후보생 합격자 명단이 적혀 있었고, 그 안에 내 이름도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장교 체구는 아닌데….?
가까이 다가가자 선배 한 분이 다정하게 웃으며 다가와 축하하며 물었다: “혹시 국방부에 아는 사람 있는 거 아냐? 빽 쓴 거 아냐?” 내 초라한 체구를 보며 믿어지지 않는 듯, 모두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하지만,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으나, 나는 내심 군종장교 후보생이 될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높은 사람 빽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기도 했기 때문이다. 시험을 보기 얼마 전, 나는 군목이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주님께서 내 마음 속에 조용히 물으셨다: “너는 왜 군목이 되려 하느냐?”
나는 솔직한 내 생각을 아뢰었다: “주님, 군목으로 가야 군대 생활이 편합니다. 저는 몸도 약한데 고생 좀 덜하게 해 주세요. 장교로 가면 훈련도 덜하고 좀 편하다고 그럽니다. 더구나 군목으로 가면 목사로 계속 일할 수 있게 됩니다. 3년 사병으로 지내는 것 보다는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주님께 내 마음을 아뢰고 난 후에 무언가 개운칠 않았고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내 기도는 순전히 내 자신만을 위한 기도가 아닌가? 편하게 군 생활하려고 군목 가겠다니 주님께서 이런 기도를 기뻐하실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닐 것 같았다. 나는 성령께 도움을 구했다.
왜냐하면,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 2: 10) 하셨고,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롬 8: 27)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영이시기에,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생각을, 심지어 그의 깊으신 것이라도 통달하신다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 사람이 기도할 때에는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였다: “성령이시여, 나는 기도할 줄 모릅니다. 내게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 내 기도를 도와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기도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까 고민하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의 기도는 점차 바뀌었다. 내 기도가 달라졌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때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그의 뜻대로 기도하게 됨을 나는 체험하였다.
“주님, 군 생활에 지치고 고달픈 우리 국군 용사들을 돌아보아 주옵소서. 젊은 날에 고향 떠나 부모 떠나 전방에서 고생합니다. 외롭습니다. 고달픕니다. 그들을 도와 주옵소서. 종이 그들에게 복음으로 위로하기 원합니다. 종에게 기회를 주시면 힘껏 찾아가겠습니다. 그들을 섬기겠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내 마음이 뜨거워졌다. 전방 군인들의 수고와 외로움과 고달픔이 내게 다가왔다. 그들의 외로움이 내 외로움이 되었고 그들의 고달픔이 내 고달픔이 되어 기도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내 자신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기도했고, 기회를 주신다면 그들을 섬길 것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기도하는 중에 기쁨이 넘쳤고 어느새 나는 확신했다: ‘주께서 나로 하여금 군목 시켜 주시리라….’
그 때부터 나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굳게 믿었으며 군목시험에 응시했고, 의무병의 조롱과 주변 사람들의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합격했던 것이다. 의무병이 나를 합격시켜 준 것이 아니다. 뇌물을 준 것도 아니다. 빽이 있어서 된 것도 아니다. 주께서…. 주께서 나를 합격시켜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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