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않은 발령>
전방에서 2년 동안 열심히 근무하고 보니 우연찮게 사단 사령부 안에는 우리 연대 대대장 하셨던 분들 두 분이 사단 참모로 올라가셨고 게다가 새로 부임한 연대장도 신고하러 갔더니 어디서 무슨 얘기를 들으셨는지 모든 군목들이 지휘관에게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을 내게 건네셨다: “목사님,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말씀만 하세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무엇이든 도와드리겠습니다.”
연대 안에서도, 사단 안에서도 어디를 둘러봐도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군 생활이 더욱 즐겁고 보람차고 마냥 행복할 것 같았다. 너무나 기분 좋을 때였다. 반면 내 마음이 긴장이 풀리고 자만해지고 있었다.
그 때 갑작스럽게 육군본부로부터 경남 진해 수송학교로 발령이 났다. 나는 당황하고 실망했다. 전방에서 앞으로 1년간 편하게 군 생활을 하고 제대할 생각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나의 인사 발령에 연대장과 사단장이 보인 반응은 또 의외였고 나를 흥분시켰다. 나의 인사 발령 소식을 듣자 곧바로 연대장은 사단장에게 전화로 나 대신 사단 내 다른 군종 장교를 보내 달라고 요청하셨다. “이 목사는 부대 지휘에 꼭 필요한 목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나에 대한 최고의 찬사였다.
연대장의 전화를 받은 사단장은 연대장의 말에 동의할 뿐만 아니라, 한술 더떠 직접 육군본부 인사감에게 전화까지 거셨다. 당시 인사감은 같은 투 스타였지만, 사단장보다 서열이 낮았다. 중위 목사 한 명을 놓고, 전방 사단장이 육군본부 인사감에게 직접 연락한 것이다. 드문 일이다. 나는 들떴다. 이제 군생활 나머지 1년은 이곳 사창리에서 좀 편하게 지낼 수 있으리라….
인사감은 전화를 받고 이렇게 답변했단다: “사단장님, 장교 인사는 참모총장 명으로 나갑니다. 참모총장님의 도장이 찍히기 전이라면 제가 소신껏 바꿔 드릴 수도 있겠지만, 명령이 공식적으로 내려진 후에는 제 마음대로 변경할 수가 없습니다. 참모총장님의 허락을 받으시면, 제가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결국, 나의 인사 발령은 그대로 진행되었고 나는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사창리를 떠나게 되었다.
못난 이목사를 인정해 주셨던 이병철 연대장님, 신임해 주셨던 정진권 사단장님, 힘껏 도우셨던 전형래 사단 참모장님, 모든 어른들께 못 다한 인사 거수 경례로 감사한 마음 전하고 싶다. 필승!
군종감에게 신고하러 국방부 군종감실에 들렀다. 그 때, 한 중령 목사가 나를 조용히 불러 국방부나 육군본부에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강원도 촌놈이 무슨 빽이 있겠느냐며 웃으며 답하자, 그는 다시 물었다: “이 목사, 전방에서 어떻게 근무했소? 전방 목사들 중에서 최고 점수를 받아 후방으로 발령된 건 아는가? 아무튼 수고하셨어. 그리고 전방에서 근무한 중위 목사를 놓고 전방 사단장이 육군본부 인사감실로 인사청탁을 한 경우는 내가 본 적이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근무했기에 지휘관들에게 그렇게 잘 보였단 말인가?”
군목에는 두 종류가 있다. 단기 군목은 3년 의무복무 후 전방에서 제대하지만, 장기 군목은 5년 이상 근무하며 전방에도 근무하지만 주로 후방으로 배치되어 근무하게 된다. 그런데 후방 진해에 있는 수송학교에 군목 자리가 생기자 군종감실은 전방 단기 군목들 중 한 사람을 뽑아 그리로 보내야 했다. 군종감실에서 육군본부에 전방의 단기 군목들의 복무 상황 정보를 요청했고, 육군본부는 보안사령부를 통해 군종감실로 보고했다. 그에 따르면 내가 전방 군목들 중 최고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후방 근무를 원한 적도, 지원한 적도, 누구한테 부탁한 적도 없다. 하물며 빽을 쓴 적도 없다. 후방 배치를 위해 연대에 파견된 보안대장 대위에게 아부한 적도 없다. 내 군목 활동이 점수가 돼서 상부에 보고되는 것조차도 몰랐다. 나는 연대장이나 사단장에게 잘 보이려 한 적도 없다.
오직 하나, 주께 했던 약속, 고생하는 사병들을 열심히 찾아 위로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려 했을 뿐이다. 주님께 기도로 시작된 나의 군목 생활, 사명감에 이끌려 일했고, 주께서 영광 거두실 것이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나를 한없이 높여 주셨다. 부대에서, 또 지휘관들에게 존경받는 목사로, 보안대장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 목사로 나를 세워 주셨다. 그래서, 나는 3년 근무 중 2년을 전방에서 근무했고, 나머지 1년을 후방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와서 보니 또 다른 일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전방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일하기 좋은 조건이었다. 전방에서는 초급장교숙소(B.O.Q.)가 멀어 교회 구석에 잠자리를 만들어 새우잠을 잤지만 진해에 오니 군인 아파트가 따로 있어 노모를 편히 모실 수 있었고 군 간부 교인들이 지극 정성으로 헌신 봉사하고 있어서 일반 목회 하듯이 목회를 했다. 와서 보니 너무 편해 전방에 근무하는 군목들에게 미안한 생각조차 들었다.
나는 제대하는 날, 오전에 학교장에게 제대 신고하고 오후에 부대 앞 진해 복민교회에서 고 지일규 목사님 주례로 결혼도 했다. 물론 내 아내와 함께…. 주님의 은혜와 복에 감사할 따름이다.
전후방 각지에서 군선교를 위해 수고하신 군목들께 격려의 박수 올리며 땀흘려 지금도 조국을 지키는 국군 장병들께 거수 경례로 감사 인사 올린다.
필승!!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었던 고마운 군종사병들, 손진영 씨 (본부대), 김태균 씨 (3대대, 아마도 목사님이 되신 듯….), 김성남 씨 (연대, 사진 없어 미안, 강촌 출신, 아르헨티나로 이민 가신 듯) 등등 여러분…. 그들에게도 고마운 인사 전한다.
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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