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울린 기도응답

산에서 울린 기도응답
 
옛 시인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묻고,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 121: 1-2) 답한다. 나도 눈을 들어 산을 본다. 그리고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 오는 것을 본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빨간 깃발이 달린 깃봉을 산 중턱에 즐 지어 세우더니 다이나마이트를 터트리며 불도저로 산을 밀기 시작하였다. 춘천댐 건설이 시작된 것이다. 춘천댐은 1961년 9월에 착공되어 1965년 2월에 완공된 발전용 댐이다. 댐 건설로 인해 수위가 높아져 강 곁으로 나 있던 구 도로는 물에 잠기고 수위에 맞춰 산 중턱으로 새로운 도로가 건설 되었다. 춘천 쪽에서 내려오는 길이 강따라 원천 모서리로 내려오지 않고 신포리에서 달거리쪽으로 빠져 원천 마을을 지나 우리 초등학교 뒷산 중턱을 지나 화천으로 내 달렸다.
 
달거리 쪽 험악한 바위를 뚫을 때에는 다이나마이트 터지고 흙과 바위 조각들이 공중으로 치솟다가 땅으로 떨어졌다. 돌조각이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이고 나서 한 참 있다가 터지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신기했다. 나와 친구들은 다이나마이트가 좀 크게 터지고 바위 조각들이 좀 더 하늘 높이 치솟길 바랬으나 한 두번 뿐이고 늘 싱겁게 터졌다. 그래도, 다이나마이트 터지는 것은 볼거리가 별로 없던 시골엔 큰 구경 거리였다.
 
다이나마이트가 터질 때마다 우리는 신나서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데, 내게는 그것이 재미만 있던 것이 아니라 감격스럽기까지 하였다. 다가오는 하나님의 도우심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시편 저자의 감격이 나의 감격이었을까…. 나는 산에서 들리는 다이나마이트 폭발음 속에서 내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1963년 2월 12일에 원천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정상적인 가정이라면 나는 원천에서 직선거리 약 4Km 떨어진 화천 중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 가정은 내가 중학교에 진학할만큼 넉넉하지 못했고 나는 집에서 놀아야 했다. 그런데, 집에서 노느니 차라리 학교에 1년 더 다니라고 해서 6학년을 두 번 다녔다. 내가 두 번째 6학년 다니던 가을 쯤에 춘천댐이 건설되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다니는 6학년을 얼마나 열심히 다녔던지 학년말 공부 다 마치고 졸업식 예행 연습할 때까지도 다녔다. 결국, 선생님께서 “이제 그만 나와도 된다”고 웃으며 말씀하셨고 친구들도 모두 따라 웃었다. 이미 졸업을 했으니 졸업을 또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학적부 기록에도 한 번 졸업한 것만 나와 있다.
 
어느 날 새벽, 새벽 기도에 나가시는 어머니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걱정에 잠이 오지 않았다. 6학년을 두 번째 다니고 있는데 내년이 되면 중학교로 진학을 해야 한다. 6학년을 세 번씩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내년이 되면 우리 집안 형편이 갑자기 좋아질리도 없고…. 그렇다고 당시 농촌에 농사 짓는 일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내 장래에 대한 걱정에 잠이 오질 않았다. 어찌하면 좋을까….? 주님께 기도하자.
 
나는 조용히 일어나 옷을 입고 교회를 향했다. 가는 도중 새벽 기도회에 가시는 큰 어머니를 만나 함께 갔다. 어떻게 예배를 드렸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또렷이 생각나는 것은 나는 내 일생 처음으로 통곡하면서 주님께 나의 안타까운 처지를 아뢰고 나 중학교 보내달라고 기도했던 것이다. 간절히 기도했다. 울면서 기도했다. 절망 속에 기도했다. 응답이 없었다. 그냥 기도하면 안 들어 주실 것 같아 내 생애를 걸고 또 다시 기도했다. “주님, 나 중학교 보내 주시면 나도 내 생애를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얼마를 기도했는지 모른다. 마음이 뜨거워졌고 기쁨과 확신이 몰려왔다. 음성으로 들은 것은 아니나 음성을 듣는 것처럼 또렷한 확신이 들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로 공부시켜 주리라.” 그 순간 눈물이 다시 쏟아졌다.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다. 얼마를 기도했는지 눈을 떳을 때에는 교회 안에 나 혼자 뿐이었다.
 
이 확신이 일평생 나를 이끌었다. 내가 중학교 졸업하고 또 돈 없어서 고등학교를 못 들어가 1년을 집에서 놀 때에도 이 확신 때문에 손 놓고 집에서 그냥 놀 수만은 없었다. “언젠가 주님께서 내게 공부할 기회를 주실거야….” 그 확신 때문에 잠시도 공부를 내 손에서 놓질 못했다. 결국 고등학교 수석 입학하여 장학금으로 공부하게 되었고, 이 확신에 끌려 살다보니 나는 결국 목사가 되고, 군목이 되고, 나중엔 명예로운 철학 박사 학위까지 받게 되었다. 기적이 아닌가?
 
산 중턱의 나무를 베고 다이나마이트로 바위를 터트리고 불도저로 미는 광경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몹시 설렜다. 무언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다. 다이나마이트가 폭발하는 소리나 불도저가 내는 굉음은 나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슥 4: 7). 페르샤 제국의 대왕은 유대 총독 스룹바벨에게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해야 하는 큰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 넘을 수 없는 큰 산과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 도우실 때 그 큰 산이 평지가 될 것이라는 스가랴 선지자의 외침이다. 내게는 중학교 진학이 큰 산이었다.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나를 절망케 하는 산이었다. 그러나 하나님 도우시면 그 큰 산도 평지가 될 것이었다.
 
멀리서 소문이 들려 왔다. 춘천댐이 건설된다는 것이다. 모두 웅성댔다. 우리 동네가 물에 잠긴다는 것이다. 우리 농토도 물에 잠기고 우리 모두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원천 동네에 천지가 개벽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집집마다 관청에서 조사관이 나와 조사하기 시작했다. 물에 잠기는 논과 밭, 우리 집 뜰에 있는 밤나무, 사과나무, 고야나무, 대추나무, 숫자까지 일일이 세며 조사해 갔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이다. 이창기 학생 중학교 보내시느라 하나님 역사하시는 것이다. 보라! 다이나마이트가 터지지 않는가? 불더저가 산 중턱을 뚫지 않는가? 춘천댐이 세워지지 않는가? 보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이창기 학생 중학교 보내시느라 춘천댐을 세우신 것이다. 혹자는 비웃을 것이다. 춘천댐 착공이 1961년이고 이창기 학생이 기도한 것은 1963년인데 춘천댐은 이창기가 기도하기 전부터 세우기 시작한 거 아닌가? 이창기가 기도해서 세워진 춘천댐이 아니라 춘천댐은 원래부터 이창기 기도와 상관 없이 세워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창기를 중학교 보내기 위해서 춘천댐이 세워졌다는 이창기의 해석은 아전인수라 말할 것이다.
 
그 말이 맞다.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가 뭐라해도, 내게는, 이창기 학생에게는, 춘천댐은 나를 중학교 보내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일하신 것이었다. 보라! 나라에서 나온 보상금으로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지 않았는가? 그 돈으로 경기도 포천군 영북면 운천리 영북중학교에 입학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만약 춘천댐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나는 중학교에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의 삶은 절망속에 처참하게 구겨지고 말았을 것이다.
 
페르샤라는 큰 산이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었듯이, 중학교라는 큰 산이 내 앞에서 평지처럼 낮아지지 않았는가? 아전인수라 조롱해도 좋다. 내게 춘천댐은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신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혹자는 내게 묻는다: “고향이 어디인가?” 나는 답한다: “용궁입니다.” 물 속이란 뜻이다. 우리 고향이 물속에 잠겼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농담이고 과장이다. 고향 전체가 물에 잠긴 것은 아니고 일부만 잠겼다.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이 당신 앞에 있다면, 주님께 기도하기를 부탁드린다. 큰 산이 낮아져 평지가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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