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보여주세요.

<하나님을 보여주세요>
 
대대장의 첫 마디는, “하나님을 보여주세요. 당장이라도 교회에 나갈께요” 였다.
 
내게는 대대장이나 연대장 등 계급 높은 사람들에 대한 알러지가 있었다. 주님께 기도할 때에 ‘고생하는 병사’들을 섬기기를 작정했기 때문이다. 내 생각 속에는 계급 높은 사람들은 ‘고생하는 병사’들 속에 들지 못했다. 그래서 계급 높은 지휘관들은 제쳐 놓고 주로 병사들만 찾아 다녔다.
 
그런데 나는 2대대 훈련장 막사에서 대대장을 찾아 만났다. 특별히 박카스를 들고 갔다. 평소에는 늘 싸구려 껌만 들고 다녔는데 이번엔 좀 비싼 바카스를 들고 갔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대대장 부인의 특별한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대장 부인은 서울 출신으로 딸 하나를 키우며 교회 바로 밑에 있는 대대장 관사에 살고 있었고 열심히 교회에 출석할 뿐만 아니라 종종 군종 사병들에게 간식도 전해 줘서 고마운 수넴 여인 같은 분이셨다. 그가 특별히 남편 전도를 부탁하였기 때문에 대대장을 일부러 만났던 것이다.
 
대대장은 인품과 성품, 지휘 통솔력이 뛰어난 분으로 대대장 임기 마치고 사단 작전참모로 갔을만큼 촉망 받는 지휘관이었다 (사단 작전참모는 대령 진급 예정자가 올라가는 자리라 한다.). 대대의 부하 장병들에게도 존경과 신뢰를 받는 군인으로서 빈틈이 없는 지휘관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는 매사에 자신감이 넘쳤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논리적이고 빈틈이 없었다. 신앙에 관해서도 부인의 열심있는 전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신앙 생활은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자신처럼 의지가 강한 사람에게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존재가 불확실한 하나님을 믿느니 차라리 현실적이고 확실한 자신의 능력을 믿었다.
 
내가 찾아 갔을 때는 바쁜 훈련 중이었다. 내게 잠시 자리를 내 주었지만 긴 시간 대화할 수는 없었다. 나는 긴 설명 대신 단도 직입적으로 “교회에 나오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도 역시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했다. “목사님, 하나님을 보여주세요. 제가 교회에 꼭 나갈께요. 집 사람이 다니는 교회 저도 나가고 싶은데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서 못 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만 보여주세요.”
 
그의 표정을 보니 농담이 아니다. 또 그의 인품이 실업는 농담을 나눌 사람도 아니다. 진심으로 묻는 질문이었다. 목사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던진 난해한 질문이 아니라 진지한 질문이었다. 나도 진심으로 답변했다. “대대장님, 나는 대대장님께 하나님을 보여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럴 자격도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하나님 자신이 대대장님께 직접 당신을 보여드려 달라고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매우 바쁜 대대장 앞에서 짧막하게 기도했다: “하나님 대대장님이 제게 당신을 보여달라는데 제게는 보여드릴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뜻이라면, 하나님, 당신 자신이 살아 계심을 직접 우리 대대장님께 보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아주 짧았다. 그러나 메시지는 확실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흘렀다. 그 동안 대대장은 우리 연대에서 대대장 임기를 마치고 사단 작전참모로 자리를 옮겼다. 계급은 중령으로 동일했으나 직책으로 보면 승진한 셈이다. 숙소는 교회 바로 밑 대대장 숙소에서 사창리 외곽에 있는 사단 참모 관사로 옮겼다.
 
어느 날 큰 사고가 터졌다. 작전참모가 탄 찝차가 험한 길 달리다가 상당히 높은 낭떠러지에서 몇 차례 굴러 아래로 떨어졌던 것이다. 차는 박살이 났고 완전 폐차가 돼서 폐차 처분하기로 했다. 심지어 함께 싣고 가던 무전기까지 박살이 났다.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다.
 
작전참모는 벌벌 떨면서 급하게 운전병과 함께 탄 통신병을 찾았다. 여기 저기 뒹굴어 나가 떨어졌지만 모두 툭툭 털고 일어섰다. 참 다행이다. 그들 모두 다친 곳 하나 없이 모두가 멀쩡하였다. 그리고 자신을 살펴 보니 자신도 어느 한 곳 다친 곳 없었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절벽을 보고 부서진 차를 보고 아무리 둘러 보아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정도로 차가 부서졌으면, 응당 사람이 죽거나 아니면 중상을 입었어야 하는데 세 사람 모두가 하나같이 다친 곳이 없이 멀쩡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작전참모의 그렇게 견고하던 그의 교만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비 논리적이다. 이것은 설명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기적이다. 기적 외에 설명할 길이 없다. 그는 스스로 결론 내렸다. 하나님이 지켜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살려 주신 것이다.
 
작전참모는 그 즉시로 자기 관사를 찾았고 밖에 나간 딸까지 불러들여, 부인과 함께 셋이 무릎을 꿇었다. 자신은 기도할 줄을 몰라 부인에게 기도를 요청했다: “내가 오늘 하나님 살아 계심을 체험했고 오늘로 나도 주님을 믿을테니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 뒤 이어 작전참모가 직접 하나님께 눈물로 형식에 맞지 않지만, 진심을 담아 감사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운전병, 통신병 모두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로 주님을 영접하겠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부인과 딸도 함께 울면서 감사 기도를 올렸으며 주님을 영접하고 이어서 세 식구는 얼싸 안고 기뻐 찬송하며 주께 영광 돌렸다.
 
하나님 참 감사하다. 그 부인은 얼마나 오랫동안 남편 구원을 위해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모른다. 그 기도를 들어 주시고 작전참모의 마음을 열어 주신 하나님, 당신의 살아계심을 직접 체험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 돌린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나는 발령 받아 진해로 내려가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부대에서 추럭으로 내 짐을 실어 주었다. 짐을 싣고 운전석에 어머니와 내가 타고 사창리 못 미쳐서 사단 참모들 관사가 멀리 보이는 도로를 따라 오는데 작전참모 부인이 멀리 우리 이삿짐 차를 기다리고 혼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 이삿짐 차가 지나가는 시간을 미리 맞추어 나오신 것이다. 관사에서 길까지 오려면 상당한 거리인데 그 먼 거리를 걸어 나오셔서 짐을 들고 서 계셨다.
 
차에서 내린 나를 붙들고 송별 인사를 하시며 한참 우셨다. 나는 어떻게 할 줄 몰라 그냥 멍하니 쳐다만 보다 차에 올라탔다. 그 때 어머니가 한 마디 하셨다. “무슨 목사가 교인은 우는데 그렇게 멀뚱하니 서 있기만 하냐? 좀 다정하게 위로를 했어야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구나! 내가 왜 그랬을까…. 차는 이미 떠나고 어찌할 수가 없었다. 후회가 막급하다.
 
다시 만난다면 다정히 안아 드리고 위로해 드리고 싶다: “집사님…. 힘 내세요. 저는 떠나지만, 주님은 언제고 집사님과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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