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기습 당했다>

교회가 기습 당했다.
 
주일 예배는 거의 설교 직전까지 진행 중에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교회 문을 “쾅!” 발길로 힘껏 박차고 안으로 뛰어 들었다. 예배는 순식간에 멈추었고 모든 시선은 뒷쪽을 향해 쏠렸다. 일찌기 없던 일이다.
 
모두 놀라 뒤를 쳐다 보는데….
 
어떤 여인이었다. 미친 여자 아닌가….? 모두 의아했다. 정상적인 여자는 그럴리가 없다. 분명 미친 여자일 것이다. 설교 단에서는 교회 문이 마주 보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볼 수 있었다. 누굴까….? 옷 매무새는 미친 여자 같지 않았다. 누굴까….?
 
여인은 교회 안에 들어와 의자에 앉는 것이 아니라 그냥 교회 입구 바박에 넙죽 엎드려 통곡을 하는 것이다. 예배는 중단 되었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 여인은 부대 일반 사병들과 부사관들의 최고 어른 부대 주임상사의 부인이었다.
 
연대급 부대인 우리 부대의 최고 어른은 대령 연대장이다. 연대장은 계급으로도 최고의 계급이고 모든 부대원들은 연대장의 지휘를 받는다. 연대장은 부대 안에서 아버지의 역할에 비유된다. 반면, 모든 사병들과 하사관들은 주임상사의 지휘를 받는다. 부대의 궂은 일과 잡스러운 모든 일들, 사실상 부대의 보이지 않는 이면의 모든 일들은 주임상사의 역할 안에 있다. 그래서 종종 부대의 어머니라 칭한다.
 
주임상사는 그러므로 출근과 더불이 연대장과 대면하며 연대장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연대장을 돕는다. 부대 안에서 벌어지는 대소사의 모든 일에 주임상사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그러나, 부대 안에서 주임상사의 위치가 매우 불안정하다. 군 간부이면서도 장교로 대접 받지 못하고 장교와 사병들 사이에서 종종 위치와 역할이 애매할 때가 많다. 군에 익숙지 못한 초임 장교들은 종종 부사관들을 자신보다 계급이 낮다고 해서 하대하다가 망신 당할 때도 많다.
 
어느 날 나는 연대장 만나러 연대장실에 갔다. 흔히 주임상사가 당번병과 함께 있어야 하는데 주임상사가 보이지 않았다. 당번병에게 물으니 몸이 아파 결석했다는 것이다. 두 주 후에 또 연대장 실에 들렀을 때에도 주임상사가 보이질 않았다. 수소문 해 보니 아직도 몸이 다 낫지를 않았다고 했다. 그런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일이 있어 사단 사령부에 갔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교회로 오는 길이었다. 불현듯 주임상사 생각이 났다. 얼마나 아프실까? 아니, 그것보다 얼마나 외로우실까? 외로움의 아픔이 더 다가왔다. 만약 연대장이 아팠다면 대대장들과 참모들…. 줄 이어 문병 왔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임상사는 누가 방문하여 위로해 드렸을까…. 생각하니 참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면서 어른 대접 못 받으시고 궂은 일을 도맡아 하시면서 응당한 대우도 받지 못한 채, 막상 당신이 몸져 누으니 아무도 찾아 오지 않는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당장이라도 나라도 달려가 위문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으나 세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첫째, 늦은 밤이었다. 벌써 곧 밤 12시다. 늦은 시각 벌써 주무실 시각이 한참 지났고 한 잠 주무실 시간에 내가 방문할 수는 없지 않는가…. 위문이 아니고 패망이다.
 
둘째, 주임상사의 관사가 문제였다. 연대장 관사나 대대장 관사는 부대 가까이 헌병들이 지키고 있다. 그러나 주임상사 관사는 부대에서 약간 떨어진 작은 골짜기 외진 곳에 헌병들이 지키지 않는 대신 아주 키 높은 나무들로 울타리를 하였고 문도 튼튼히 걸어 잠그시고 커다란 무시무시한 개들을 몇 마리 키우고 계셨다. 그 개들이 무서웠다. 밤에 혼자 갔다가 무슨 변이라도 생기면 어쩌란 말이냐?
 
셋째, 주임상사 부인 문제였다. 소문에 만신을 위한다 했다. 만신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지금도 잘 모르지만 어렴풋이 무당들과 가깝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개신교 목사가 방문하는 것을 즐겨할 리가 없을 것이다. 전도가 아니라 역효과를 이르킬 수있고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도 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며 끊임 없이 세 가지 문제를 거론하며 내가 주임상사 댁을 방문하지 못하는 이유들을 반복하여 답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 끊이지 않는 또 다른 음성이 들려 왔다. “너 왜 군목이 됐니?” “너 뭐하러 여기까지 왔니?” “고생하는 자, 마음 아픈 자, 외로운 자, 찾겠다며?”
 
괴로웠다. “부대에서 외져 아무도 가려하지 않는 그 곳, 무서운 개들이 득실 거리는 거기를 꼭 이 시각에 가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 나는 반항하고 있었다. “공연히 갔다가 개들한테 내가 물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가기를 원하십니까?” 나는 속으로 아우성을 쳤다. “아니 막말로 갔다 손 칩시다. 만신 위한다는 그 사모님인데 나 개신교 목사가 가면 반기기나 하겠습니까, 주님!!” 나는 거의 울상이 되어 반항하고 있었다. “나는 절대 오늘 저녁에는 주임상사 관사로는 갈 수 없습니다. 내일 날이 밝으면 갈께요. 꼭 가겠습니다. 꼭 간다니까요…..” 단호하게 결심도 해 보았다.
 
그럼에도 명월리 골짜기 길로 들어서면서 나도 모르게 그 시각에 문을 연 구멍가게가 있나 엿보게 됐고, 끌리듯 한 가계에 들어가 삼립 빵과 음료수 몇 개를 샀다. 그리고 음침한 그 골짜기,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던 주임상사 관사로 향하게 됐다. 성령의 이끌림이란 이런 것인가….
 
가까이 가기도 전에 벌써 개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 어려서 개에게 물려 아직도 엉덩이에 그 상처의 흔적이 남아있는 나는 개 공포증이 여간 심한 것이 아니다. 심장은 뛰고 가슴을 벌렁거렸다. 관사에 들어서자 난리가 아니다. 개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골짜기로 메아리져 내게는 천둥이 울리는 것 같았다.
 
주임상사와 부인은 한 밤 중에 문을 열고 내가 온 것을 확인하곤 어쩔 줄 몰라했다. 밖으로 뛰쳐 나와 개들을 진정시키고 나를 안방으로 이끌었다.
 
잠시 기도하고…. 그 때나 지금이나 말 주변 없기는 마찬가지…. 얼마나 아프냐고 몇 마디 묻고는 기도하겠다고 하고 간단히 기도했다.
 
만신을 위하는 것을 알기에 차마 예수 믿으란 얘기는 입밖에도 꺼내지 못하고 병 고쳐 달라는 기도만 간단히 하고 늦은 밤이라 금방 나왔다. 전도는 하지도 않았다. 아니 못했다. 또 전도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성령께서 이끄신 것은 성령께서 책임지시는 것 같다. 내 일은 거기까지다. 그냥 병문안만 한 것뿐이다. 그 다음부터 성령께서 역사하셨다.
 
그 부인의 마음을 어찌나 뜨겁게 감동하시는지…. 이 목사가 그렇게 보고 싶었고, 예배에 참석하고 싶었고, 교회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마음 속에 흘러 넘쳤다.
 
그러나, 만신을 위하는 것을 동네 사람들이 모두 아는데 어떻게 갑자기 교회에 출석할 수 있겠는가? 체면이 있지…. 그것도 주임상사 부인이…. 그럴 수 없다. 그래서, 그는 가까운 본부대장 부인, 착실한 신자 집사 댁에도 가서 민기적 댔다. “교회에 나가자” 는 말만 하면 금방 “예스”하고 따라 나갈 작정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그 집사는 야속하게도 그에게 교회에 나가자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또 다른 집사들 집에도 들렀다. 교회 다는 하사관들 부인들을 모조리 찾아 다녔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교회에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실망에 실망을 거듭했다.
 
누구도 그녀에게 전도를 해 주지 않았다. 두 주일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교회에 가고 싶어 미칠 지경에 이르렀다. 이젠 교회를 안 나가면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주임상사 부인이면 어때! 미치는 것보다는 낫지. 그녀의 결심이다.
 
셋째 주일 아침에 오늘은 꼭 교회에 가리라 결심하곤 문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교회 앞에까지 오는 거리는 길지 않았으나 그녀가 오는 시간은 한 없이 길었다. 그 동안 벌써 예배 시간은 지났고 예배는 시작되었다. 교회 문 밖까지 왔다. 누가 좀 나와 끌고 가 주었으면 좋으련만…. 아무도 내다 보질 않았다.
 
그녀는 결국 울화통을 참지 못하고 격한 마음으로 교회 문을 발로 박차고 뛰쳐 들어왔다. 교회 바닥에 넙죽 엎드려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대성 통곡을 하였다. 설교하던 내가 설교를 중단하고 뛰어 내려가 그를 안아주고 토닥여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부끄럽다. 나는 그렇게 못하고 구경만 했다.
 
예배를 마친 후에야 그를 만나 그를 영접해 주었다. 그가 “예수 믿자” 혹은 “교회에 가자”는 말 듣기를 그렇게 원하고 방문했던 우리 집사들, 교우들이 그녀의 애타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그래서, 한 시라도 그를 빨리 이끌어 주었더라면…. 우리의 무지가, 우리의 무감각이, 전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애타게 만드는 것 같다. 누가 우리의 전도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 우리는 무조건 기회 있는 대로 전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기습 전도가 기습 공격으로 끝났다. 나는 한 밤중에 그녀의 집을 기습 전도했고, 그녀는 예배 시간 중 교회를 기습했다. 이 모든 일을 사실은 우리가 했다기 보다 성령께서 행하신 일들이다.
 
그녀가 예수 믿기 시작하고 아쉽게도 나는 곧 바로 진해로 발령 받아 떠났다. 오랜 후 들리는 소식으로는 춘천에 나와 사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 주임상사께 주님의 풍성한 위로와 은혜가 함께 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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