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강병훈 목사님 추모의 글

2025년 3월 31일 감리교신학대학교 웨슬리 채플에서 고 강병훈 목사님 추모 예배가 있었습니다. 다음은 제가 낭독한 추모사입니다:
 

고 강병훈 목사님 추모의 글

제가 고 강병훈 목사님을 뵙고 겪었던 일화들을 짧게 말씀드리며 목사님을 추모하려고 합니다.
 
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2002년 7월 11일 목사님께서 사모님과 함께 네덜란드를 방문하셨을 때입니다.
그 다음 날, 저는 목사님을 모시고 ‘그리스도를 본 받아’의 저자 토마스 아 켐피스의 유적이 있는 네덜란드 북쪽에 있는 도시 즈볼레로 차를 몰았습니다. 가는 데만 약 2시간 넘게 걸렸습니다. 날씨가 무더웠고 더구나 제 차는 에어콘이 없었습니다. 저는 가벼운 난방 차림으로 가볍게 운전을 했고 목사님은 넥타이를 매시고 정장을 하셨습니다. 운전하면서 가는 길에 뒷좌석에서 뻘뻘 땀을 흘리며 앉아 계신 목사님께 요청하였습니다: “목사님, 날씨도 덥고 차는 냉방이 안 되는데 윗도리는 좀 벗으시지요.” 묵묵부답이셨습니다. 못 들으셨나 싶었습니다. 그 먼 길을 묵묵히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가셨습니다. 마음 속으로 안절부절 못하던 제가 결국 즈볼레 시내에 주차를 하면서 “목사님, 양복 저고리는 제가 들겠습니다. 양복은 벗어 저를 주세요.” 그 때 목사님은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목사, 내가 옛 성인의 발자취를 더듬으러 왔는데 이까짓 더위쯤이야 참아야 하지 않겠나?” 유럽에 30년 살면서 내 자신을 포함해 양복 입고 정장으로 관광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얇은 난방 차림으로 운전했던 제가 쥐구멍을 찾았습니다. 관광 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수련 하러 오신 것 같았습니다. 옛 성인의 발자취를 밟는 경건한 모습을 뵈었습니다.
 
저희 집에 며칠 계시면서 헤이그에 이준기념교회를 세우면 좋겠다는 하시면서 한국 가시면 이 일을 추진하시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현실적으로 유럽에서 한국 교회가 교회 건물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허무맹랑하지 않습니까? 이 목사 격려차원의 ‘립 써비스’ 정도로 여기고, “말씀만 들어도 고맙습니다” 라고 답변 드렸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목사님께서는 정말 한국에 돌아가셔서 감독회장님과 각 연회 감독님들을 독려하셨고 마침내 헤이그 이준 기념교회가 2007년 이준열사 순국 100주년에 때 맞춰 설립되도록 힘써 주셨습니다. 말씀을 지키셨습니다.
 
호사다마라 했나요? 좋은 일을 하려다 보니 방해도 있었습니다. 이준열사기념교회를 세운다니까 서울 큰 교회 출신 장로님이 저희 교회를 그 교회 지 교회로 만들려던 당신의 계획이 빗나가자 이준열사 기념교회 설립을 반대하셨고 교회에 큰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 소식을 들으신 고 강병훈 목사님께서 그 모든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도록 저희를 적극적으로 도우셨습니다.
 
목사님께서 특히 관심쓰신 것은 저희가 매 해 네덜란드인 6.25 한국전 참전 용사들을 위로하는 위로회였습니다. 저는 네덜란드에 가서 6.25한국전쟁 때 유엔군으로 참전하신 참전용사들이 계신 것을 보고 참 반가웠습니다. 6.25 때 도와 주신 것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불러 강연도 듣고, 위로회도 갖고, 또 병원 심방도, 가정 심방도 하고 참전용사들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참전용사 위로회를 준비하는 것이 힘들다 보니 교인들 중에는 불평이 만만치 앟았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저의 참전용사 목회를 적극 지지해 주셨습니다. 제가 참전용사 위로회 힘들어 못하겠다고 목사님께 말씀 드리자, 목사님께서 정색을 하며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목사, 6.25 때 목숨 걸고 우리 도와준 이들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것은 이 목사 개인의 일이 아냐. 우리 나라를 대표해서 하는 거야. 대사가 하는 역할, 대통령의 하는 역할을 이 목사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야. 외로워도 주님 알아주셔. 열심히 해. 알았어!?”
 
2007년 7월 14일 토요일 대대적인 헤이그이준열사순국100주년 기념교회 봉헌 예배가 헤이그 근교 레잇센담에 있는 헤이그이준기념 교회에서 열리게 되었습니다. 신경하 감독회장님을 비롯 각 연회 감독님들과 대사님과 이홍구 전 총리 등 많은 유명 인사들, 손님들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꼭 참석해야 할 고 강병훈 목사님은 참석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간곡히 참석을 요청하자 목사님께서 답변하셨습니다: “나는 내 할 일 다 했을 뿐이야. 박수는 다른 사람이 받아야 돼…..” 영광스러운 자리를 사양하시고 그늘진 자리를 지키셨습니다. 참 어른의 모습입니다.
 
2023년 4월 19일 서울 과천 자택으로 목사님을 방문해서 은퇴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것 저것 물으셨고 제 거처를 물으셔서 48년 목회하고 은퇴했는데 변변치 못해 방 한 칸 마련하지 못했다고 답변 드리자, “나도 그랬어. 그리고 우리 주님도 그러셨어.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말씀하셨어. 이 목사, 힘 내!” 풀 죽은 저를 힘있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목사님을 마지막 뵈었습니다.
 
고 강병훈 목사님께서는 저와 헤이그교회 교인들에게 천사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연고 없이 갑자기 나타나 아낌없이 도우셨고, 함께하시더니 또 갑자기 가셨습니다. 그 분의 삶의 자취가 저희에게 당신이 평소 말씀하신대로 주님의 머슴으로의 삶을 보여 주셨습니다. 목사님을 뵈었던 것이 저에게 행복이었고 기쁨이었습니다. 언젠가 주님 앞에서 뵈올 날을 기대하며 추모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5년 3월 31일 냉천동,
 
이창기 목사 올림

Comments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